연습생 시간은 100일뿐입니다
한 대기업 그룹의 신입 구성원 대상 온보딩 과정을 설계했던 기억입니다. 6백여 명의 신입 입사자를 위한 9일짜리 오프라인 과정. 커리큘럼 개발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였지만, 사실 저에게는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사람에게 우리가 진짜 해줘야 할 말은 무엇인가"를 다시 정리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담당 팀장님께서 첫 미팅에서 물으셨습니다. "저희 신입 교육, 매년 합니다. 그런데 6개월 지나면 참석자들 얼굴이 다 다른 얼굴이 되어 있어요. 무언가 남았으면 좋겠는데, 뭘 남겨야 할지를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이 질문 앞에서 저는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신입 교육이라는 것을 우리는 왜 하는가. 조직에 대한 이해? 업무 스킬? 그런 것들은 어차피 6개월 안에 현업에서 다시 배웁니다. 강의실에서 배운 것과 자기 자리에서 배운 것이 부딪히면, 언제나 자기 자리 쪽이 이깁니다. 그렇다면 강의실에서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문장을 프로젝트 중반에 강의 개시 슬라이드로 꺼냈습니다. 신입 대상이라 부드럽게 시작해야 한다는 조언을 여러 번 받았지만, 저는 이 문장을 뺄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계기였기 때문입니다.
신입이라는 이름은 조직에서 예상보다 짧게 끝납니다. 입사 100일이 지나면 아무도 그 사람을 신입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만 자기가 여전히 신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차가 신입 3년차의 정체를 만든다고 저는 봅니다. 연습생이라는 심리 상태에서 프로 선수로 넘어가는 스위치를 언제 켤 것인가. 이 스위치를 켜주는 것이, 6백여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9일짜리 과정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 개의 문장을 오래 붙들었습니다
과정 안에 넣을 문장을 만드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습니다. 커리큘럼 표가 아니라 문장입니다. 왜냐하면 9일 뒤에 이 사람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을 때, 표는 남지 않고 문장 몇 개만 남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문장. "프로는 결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신입에게 결과를 요구하는 것이 너무 이르다는 반론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반대라고 답했습니다. 이 문장을 신입 시절에 들어야 이후에 결과로 판단받는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늦게 들으면 이 문장은 협박이 됩니다.
두 번째 문장. "어느 누구도 당신이 실패하길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조차." 이 문장은 원래 프로젝트 산출물에 없던 문장인데, 강의 리허설을 하다가 나온 문장입니다. 신입들은 자기 검열이 심합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이거 물어봐도 되나", "선배가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건 아닌가". 그런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아무도 당신이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는데, 유일하게 자기 자신만 자기가 실패할 거라고 예단하고 있다는 사실.
세 번째 문장. "아직도, 언제까지나." 이건 자기계발에 관한 문장이었습니다. 신입 시절에 배운 자기계발 습관은 40대에 좌우됩니다. 이 문장은 프로세스가 아니라 태도에 관한 것이었고, 사실은 저 스스로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성과 나게 일하는 법에 대해
두 번째 모듈은 "성과 나게 일하는 법"이었습니다. 신입에게 성과 얘기를 3시간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신입 시절에 형성된 일하는 습관이 그 사람의 남은 커리어를 결정합니다. 그러니 지금 말해야 합니다. 늦으면 습관이 굳어버립니다.
이 모듈의 핵심은 세 가지였습니다. 일하기 전에는 기대 결과물을 리더와 반드시 합의한다. 일하는 중에는 중간 결과물을 공유해 어긋남을 조기에 발견한다. 일한 후에는 반드시 회고를 남긴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신입에게는 이게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사실이 중요했습니다.
협업과 소통, 그리고 세 개의 네트워크
네 번째 모듈에서 강조한 것은 세 개의 네트워크였습니다. 개발 네트워크(나를 성장시키는 사람들), 운영 네트워크(내 일이 굴러가게 하는 사람들), 전략 네트워크(내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함께 그려주는 사람들). 신입 시절에 이 셋을 구분해두면, 3~5년 뒤에 커리어 상승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잘된 것과, 잘 안 된 것
잘된 것은 문장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몇 달 뒤, 참석자 중 한 명이 "연습생 시간은 100일뿐입니다"라는 문장을 자기 책상 앞에 붙여두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5백 페이지짜리 교재보다 그 한 문장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이 프로젝트가 저에게 준 가장 큰 배움이었습니다.
잘 안 된 것도 있습니다. 사후 학습 파트였습니다. 저희는 9일 오프라인 과정이 끝난 뒤에도 3개월간 이어지는 팔로업 학습을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현업에 배치된 신입들에게 팔로업 링크는 부담이 되었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배울 것이 밀려드는 상황에서, 강의실 콘텐츠를 다시 열어보는 것은 우선순위가 되지 못했습니다. 온보딩의 진짜 승부는 오프라인 강의가 아니라, 현업에 배치된 뒤 첫 3개월이라는 것을 저는 이 프로젝트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3개월을 저희 컨설턴트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저는 아직도 못 찾았습니다.
돌아보면 이 프로젝트가 저에게 남긴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신입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계기라는 것. 그들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싶어 하고, 이미 충분히 두려워합니다. 우리가 해줄 일은 그 마음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자기 언어로 만들도록 돕는 일입니다. 둘째, 온보딩은 이벤트가 아니라 제도라는 것. 이벤트로 설계된 온보딩은 이벤트로 끝납니다. 제도로 설계된 온보딩만이 사람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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