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지키기 위해 감정적이 되지 않는다
한 오후의 강연이었습니다.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의 임직원들 앞이었고, 주제는 "일터의 대화 — AI 시대, 일 잘하는 사람의 문법"이었습니다. 강의를 하다가 저는 어떤 문장을 두 번 말했습니다. 두 번째 말할 때는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그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그냥 일을 합니다. 결과로 말합니다. 감정을 지키기 위해 감정적이 되지 않습니다." 원래 슬라이드에 적혀 있던 문장인데,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앞자리 몇 분의 표정이 살짝 달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는 조금 천천히 읽었습니다. 강연자로서 어떤 문장이 청중을 잠깐 멈춰 세우는지, 그 순간에는 압니다.
이 문장의 무게는 뒷부분이 아니라 앞부분에 있습니다. "감정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대개 반대로 이해합니다. 감정적이 되지 않으려면 감정을 죽여야 한다고. 감정을 억누르고, 무표정해지고, 프로답게 굴어야 한다고. 그러나 이 문장이 말하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감정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것을 함부로 쏟아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강연에서 말했으면서도, 강연이 끝난 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 자신에게 도로 물었습니다. "그럼 너는 오늘 감정을 지켰느냐?" 정직하게 말하면 몇 번은 지켰고, 몇 번은 못 지켰습니다.
그날 잘 안 됐던 것
중간쯤, 어떤 분이 손을 들고 물었습니다. 요지는 이랬습니다. "선생님, 저희 팀장님한테 이 얘기를 해도 될까요? 팀장님이 저희한테 늘 감정적이거든요." 웃음이 살짝 나왔고,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자리에서 좋은 답을 못 했습니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몇 문장 하고 넘어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원했던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인정이었습니다. "그런 팀장 아래에서 일하는 것이 지치시죠"라는 한 문장이면 충분했을 것입니다. 25년을 강연했는데도 저는 종종 이런 순간을 놓칩니다. 청중의 질문을 문제로 받고, 답으로 갚으려 합니다. 질문 중에는 답을 원하지 않는 질문도 있다는 것을, 그날도 지나가고 나서 알았습니다.
그래도 하나 남겨진 장면
강의 후반부에 저는 "탁월한 팀에는 있는 것, 그저 그런 팀에는 없는 것" 일곱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방향, 전략, 규율, 친밀함, 신뢰, 성공경험, 자원. 이 중에서 청중이 가장 오래 머무른 것은 여섯 번째, "실패를 실패로 남겨두지 않는다"였습니다.
한 분이 강의가 끝나고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팀은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능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강의 듣고 나니, 실패를 실패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안 되고 있었네요." 이 말이 그날 제가 얻은 가장 큰 문장이었습니다. 강연자가 청중에게 배우는 순간은 이런 식으로 옵니다. 준비한 슬라이드보다 준비되지 않은 대화가 더 오래 남습니다.
돌아와서 다시 보는 문장
피터 드러커의 문장 하나를 강의 중에 인용했습니다. "바른 품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조직문화를 파괴하고 성과를 저하시킨다." 이 문장을 인용할 때마다 저는 스스로에게 조금 찔립니다. 저 자신이 늘 바른 품성으로 일해왔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할 순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연자는 종종 자기가 못 지킨 것을 남에게 권합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강의를 계속합니다. 리더의 품성, 팀의 언어, 일터의 대화. 이 세 가지가 결국 같은 하나라는 생각이 요즘 더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이 질문을 25년째 각도만 바꿔가며 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저는 오늘 세 번째로 씁니다. 강의에서 두 번, 지금 한 번. 다음에 이 문장을 다시 만나면, 그때는 조금 더 지켜낸 상태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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