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후 나에게 죄짓지 않는 것
2026년 여름, 한 대형 건설사의 8년차 구성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설계했습니다. 120분, 딱 두 시간. 그 두 시간을 두고 오래 붙들었던 것은 방법론이 아니라 한 가지 질문이었습니다. 8년차에게 우리가 지금 줄 수 있는 것이 정말로 있는가.
담당 부서에서는 처음에 "리더십 예비교육"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셨습니다. 8년차니까 곧 리더가 될 사람들, 그러니 리더의 언어를 미리 익히자는 취지였습니다. 저희는 그 방향에 조심스럽게 반대했습니다. 8년차가 부담을 느끼는 지점은 리더십 이론이 아니라, 지난 8년 동안 자기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가 흐릿해졌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입도 아니고, 리더도 아직 아닌 자리. 회사는 이 층을 대개 두 방식으로 다룹니다. 하나는 리더십 예비교육, 다른 하나는 동기부여 특강. 둘 다 8년차 본인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리더가 되기 전에 왜 리더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지, 왜 동기부여가 필요한지 아무도 자기 언어로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프로그램의 이름을 BOOST@8로 붙였습니다. Rethink – Refocus – Rebuild. 세 개의 단어를 골랐는데, 사실 이 세 단어를 골라놓고도 며칠 동안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이 단어들로 정말 무엇을 하려는 건가." 결론은 이랬습니다. 정답을 주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자. 8년차에게 답을 주는 것은 오히려 폭력에 가깝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8년을 다시 볼 수 있는 각도였습니다.
세 개의 세션, 그리고 하나의 축 문장
첫 세션 Rethink는 "나는 어디에 속해 있었는가"를 묻습니다. 8년치 업무 타임라인을 그리게 하는데, 그 타임라인 위에 팀과의 관계 흐름을 겹쳐 그리게 했습니다. 이건 서베이가 아니라 지도 그리기에 가깝습니다. 자기 8년의 지형을 자기 손으로 그려보는 30분. 이 시간을 위해 프로그램 전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번째 세션 Refocus에서는 3C(Condition – Choice – Change)로 성과를 다시 봅니다. 잘된 일, 잘 안 된 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과가 어떤 조건에서 나왔고, 그때 무엇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무엇이 바뀌었는지를 붙여 봅니다. 그리고 페어 코칭을 붙였습니다. "내가 보기엔 당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어요." 이 문장을 사람 대 사람으로 건네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훈련이 아니라 경험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 세션 Rebuild는 가장 어렵게 설계한 파트입니다. "명사 vs 동사 정체성"이라는 프레임을 넣었습니다. 나는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인가(명사)가 아니라,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인가(동사). 자리가 바뀌어도 남는 자기 방식이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8년차에게 필요한 정체성 언어는 "차장 진급 준비"가 아니라, 이 동사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 문장을 놓았습니다.
이 문장은 프로그램을 설계하다가 어느 새벽에 튀어나온 문장이었습니다. 8년차에게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흔한 방식은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같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대개 안 먹힙니다. 상상이 안 되기도 하고, 상상해봐야 지금 나와 무슨 관계인지도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향을 뒤집었습니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잘했다"까지도 필요 없습니다. "죄짓지 않았다"면 충분합니다. 이 최소한의 기준이 오히려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을, 컨설팅 자리에서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잘된 것과, 잘 안 됐던 것
설계 단계에서 잘된 것은 "27일"이라는 프레임을 마지막에 붙인 부분입니다. 습관 형성에 필요한 최소 시간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가지가 있고, 저희가 뽑아 든 27일이라는 숫자가 특별히 과학적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숫자가 참여자에게 남기는 감각은 분명합니다. "오늘부터 27일. 그게 다다." 두 시간짜리 프로그램이 두 시간으로 끝나지 않도록, 참여자의 일상으로 밀어 넣는 마지막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잘 안 됐던 것도 있습니다. 정확히는, 실행 이후를 설계에 담지 못했습니다. 120분이 끝난 뒤에 참여자들이 자기 워크시트를 어디에 두고, 27일째 되는 날에 누가 이걸 다시 꺼내볼지에 대한 시스템이 저희 안에 없었습니다. 담당 부서와의 협의로 팔로업 방안을 몇 가지 논의는 했지만, 프로그램 자체에 내장된 재소환 장치는 결국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건 반복해서 겪는 저희의 약점입니다. 컨설턴트가 떠나고 나서도 굴러가는 실행체계를 만드는 일에서, 저희는 여전히 서툽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제안서만으로는 이 프로그램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기 어렵습니다. 8년차 두 사람이 페어 코칭에서 서로에게 "충분히 해낼 수 있어요"라고 건네는 그 10분, 그 장면이 프로그램의 심장인데, 그건 문서로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제안서가 통과되어야 그 장면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 문서는 계속 쓸 수밖에 없지만, 문서와 현장 사이의 이 간극이 저희가 아직 다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것
8년차 프로그램을 여러 번 설계하고, 강의도 여러 번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8년차는 사실 회사에 가장 서운한 시기입니다. 신입 때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리더의 조명도 아직 자기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이 서운함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프로그램은 대체로 실패합니다. 저희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그것을 "지난 8년, 당신은 어디에 서 있었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다뤘습니다. 서운함을 서운함으로 답하지 않고, 지도 그리기로 답한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내내 저는 저의 8년차 시절을 여러 번 떠올렸습니다. 그때 누가 저에게 이런 두 시간을 준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조금은 그 시절의 저에게 뒤늦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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