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구조조정
경영자에게 주어진
인력 슬림화의 과제
위기가 닥친 후 하는 구조조정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평상시에 하는 구조조정은 미래를 위한 전략적 투자다.
하나금융연구소는 한국 경제가 양극화와 저성장이 꼬리를 물고 서로를 심화시키는 '우로보로스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성장이 집중되고, 내수 중심의 전통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상대적으로 성장이 더디다.
이런 상황에서 SK, LG, 포스코, 롯데, 한화, 신세계, 카카오 등 8개 그룹의 14개 계열사가 2024년 하반기 희망퇴직에 돌입했다. 상시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있다. 특히 흑자일 때도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언제 어떤 형태로 위협이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흑자라도, 안으로는 조직의 무게와 시장의 불확실성이 경영자를 압박한다. 실제로 어떤 회사는 100명 직원을 30명으로 줄였는데 매출과 생산성에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이익률이 늘었다. 지금은 역설적이게도 "흑자 속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꺼내야 할 때다.
대잔류(Big Stay) 현상
불확실한 경기 속에서 인재들이 이직 대신 '머무름'을 택한다. 표면적으로는 퇴사율이 줄어 반가운 일처럼 보이지만, 고연차자와 장기 근속자가 늘면서 조직의 신진대사와 세대교체가 느려진다. 머무름은 정체로, 정체는 둔화로 이어진다.
고령화와 초고령 사회 진입
2025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3%를 넘어섰다. 2036년 30%, 2050년 40%를 초과할 전망이다. 연공 중심 인사 체계는 유지 비용을 급격히 끌어올리고, 기술 적응이 더딘 일부 인력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주 4일제 법제화 논의
정부가 주 4.5일제를 위한 법안을 2025년 안에 국회에 제출한다. 법정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에서 48시간으로 축소한다. 동일한 생산성을 유지하려면 자동화, 효율화, 추가 인력 투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법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사회적 압력은 이미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피고용인 배려 강화 요구
사람인 조사에서 직장 선택 기준 2위가 복리후생(19.6%)이다. 워라밸, 정신건강, 유연근무, 휴가 사용, 돌봄휴직 등 근로조건 개선 요구가 높아졌다. 직원들은 임금만이 아니라 '삶의 질' 전체로 회사를 평가한다. 만족하지 못한 직원은 조용한 사직과 몰입 저하로 이어진다.
오히려 흑자일 때야말로 자율적으로,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고비용 구조에 대한 선제 대응
인건비와 복리후생비는 기업 재무에서 가장 경직성이 큰 비용이다. 불황기에 수익이 줄어들면 바로 이 고정비가 발목을 잡는다. 흑자일 때 미리 구조를 다듬지 않으면, 위기 시에는 적자와 비용이 한꺼번에 덮쳐온다. 코오롱은 흑자 상황에서 수익성이 낮은 비소재사업을 정리해 부채비율을 364%에서 119%로 대폭 줄였다.
기술 변화와 자동화의 물결
AI와 디지털 전환이 전 산업을 흔들고 있다. IBM은 HR 워크플로우에 AI 에이전트를 도입해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확보한 여유 인력을 전략 분야에 재배치했다. 인력 감축 없이 단순 업무에서 벗어난 직원들이 핵심 역량을 발휘하는 영역에 배치된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면 중복 인력을 줄이고 핵심 인력에게 재교육과 업스킬을 제공해야 한다.
자원의 집중과 조직 유연성
모든 인력에게 자원을 균등 분배하는 시대는 지났다. 성과와 잠재력이 높은 핵심 인재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그렇지 않은 영역은 정리해야 한다. 조직이 비대하면 의사결정은 느려지고 시장 변화 대응 속도는 늦어진다. 슬림한 조직만이 변화에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
한 기업은 100명 직원을 30명으로 줄였는데 매출과 생산성에 변화가 없었고 이익률이 늘었다. 이는 많은 기업에서 잉여 인력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도 창립 11년 만에 2023년 -2,064억 원 영업손실에서 2024년 907억 원 영업이익으로 반전시켰다.
인력 진단 — 전략과 무관한 직무를 찾아라
전략과 무관한 직무, 중복된 업무, 낮은 성과를 내는 영역을 파악한다. 단순한 숫자 맞추기가 아니라 전략적 우선순위와의 연관성을 기준으로 선별해야 한다.
IBM 사례 — AI 에이전트로 반복 업무 자동화 후 인력 전략 재배치, 감축 없이 효율화 달성재배치와 업스킬 — 감축보다 이동이 먼저다
일부 인력은 신사업이나 디지털 전환 부문으로 재배치하고, 필요한 교육을 통해 새로운 역할을 맡게 한다. 기술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기에 새로운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역량 개발이 핵심이다.
성과 중심 원칙 확립 — 연공이 아닌 기여도로
연공서열이나 단순 근속이 아니라 기여도와 성과를 기준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대잔류 시대일수록 "머무르는 것만으로는 안전하지 않다"는 명확한 신호가 조직 안에 흘러야 한다.
핵심 인재 보호와 보상 — 구조조정의 명암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수 인재가 이탈하지 않도록 차별적 보상과 성장 기회를 제공한다. 인재 유출은 구조조정의 모든 효과를 무너뜨린다. 불확실한 시기일수록 핵심 인재에게는 확실한 미래 비전과 성장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 "흑자인데 왜"에 답하라
"흑자인데 왜 줄이느냐"는 질문은 반드시 나온다. 경영자는 이를 회피하지 말고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시장 환경의 변화, 기술 트렌드, 경쟁사 동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납득시킨다. 지금 줄이는 것은 내일을 위한 투자다.
민첩성
계층이 많고 의사결정 라인이 복잡한 조직은 변화에 둔감하다. 플랫한 조직 구조를 통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조직 구조 자체가 전략이다.
전문성
모든 것을 다 하는 제너럴리스트보다 특정 분야에서 깊은 전문성을 가진 스페셜리스트가 더 중요해진다.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인재에게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적응력
기술 변화가 빨라지면서 기존 직무가 사라지고 새로운 직무가 생겨난다. 지속적인 학습과 재교육을 통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미래를 위해 스스로 칼을 드는 경영자만이 진정한 리더다
흑자든 적자든, 호황이든 불황이든, 경영자는 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효율화를 추진해야 한다. 현재의 안주는 곧 미래의 위기가 된다. 조직의 비대함을 그대로 두고 시장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인력 슬림화를 미루는 경영자들에게 묻고 싶다.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가? 시장이 더 악화될 때까지? 경쟁사가 앞서갈 때까지? 그때는 이미 늦다.
결단해야 한다. 어려운 결정을 미루는 것은 경영자의 책임 방기다. 용기를 내야 한다. 인력 슬림화는 분명히 어려운 일이다. 내부의 반발도 있을 것이고 단기적인 혼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오늘의 흑자는 어제의 성과가 만든 결과일 뿐이다. 내일의 성공은 오늘 우리가 얼마나 날카롭게 체질을 개선하는가에 달려 있다. 위기를 맞아 어쩔 수 없이 칼을 드는 경영자는 흔하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스스로 칼을 드는 경영자만이 진정한 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