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은 냉혹한 책이 아니었다
공동체를 지키려는 절박한 책이었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에 가려진 진짜 『군주론』.
엄청난 행운을 타고났던 체사레 보르자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에서
마키아벨리는 무엇을 깨달았고, 그것이 왜 지금 우리에게 남는 이야기인가.
『군주론(Il Principe)』이라고 하면 대부분 '위험한 책'부터 떠올립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군주는 사자이자 여우여야 한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사랑받는 것보다 안전하다' — 이런 문장들이 500년 동안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낙인이 되어 책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권력자에게 뭐든 해도 된다고 부추기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공동체와 국가를 지켜내기 위해 리더가 감당해야 할 냉혹하지만 절박한 고민이 담긴 책 — 그게 제가 만난 진짜 마키아벨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절박함의 한복판에 체사레 보르자가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가장 뜨겁게 관찰했고, 결국 가장 깊이 실망했던 인물. 엄청난 행운을 등에 업고 이탈리아 통일의 문턱까지 갔다가 한순간에 스러져버린 이 사람의 이야기 안에, 『군주론』의 진짜 메시지가 숨어 있었습니다.
'마키아벨리 = 권모술수의 화신'이라는 오해를 걷어내고, 체사레 보르자의 흥망을 따라가며 포르투나(운명)와 비르투(역량)라는 마키아벨리의 두 축이 오늘의 리더에게 무엇을 묻는지 함께 보는 글입니다.
01먼저, 오해부터 걷어내야 한다
'마키아벨리적(Machiavellian)'이라는 형용사는 영어권에서 오래도록 교활함, 배신, 권모술수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마키아벨리 본인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행정가였고, 메디치 가문이 복귀한 뒤 실각당해 시골집에서 낡은 옷을 입고 낮에는 나무를 팔고 밤에는 고전을 읽으며 이 책을 썼습니다.
『군주론』은 추상적인 정치철학서가 아닙니다. 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같은 강대국 사이에 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계속 침탈당하고, 용병에게 배신당하고, 시민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눈앞에서 본 실무자의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흔한 오해
"군주는 착할 필요 없다.
필요하면 거짓말하고, 배신하고, 죽여도 된다.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책."
실제로 읽어보면
"이상적인 국가를 그리기보다,
실제로 국가가 무너지는 이유를 관찰한다.
그리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리더가 감당해야 할 무게를 이야기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선함'은 개인 윤리 차원의 착함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진짜 악(惡)은 공동체를 지키지 못한 무능입니다. 용병에게 나라를 맡겨 백성이 학살당하게 두는 '착한 군주'가 있고, 단호한 결단으로 질서를 세워 백성이 안전하게 사는 '냉혹해 보이는 군주'가 있다면 — 마키아벨리는 후자를 더 도덕적이라고 봤습니다.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둘 다를 가질 수 없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다만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
이 문장이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받는 리더'와 '두려운 리더'를 개인 취향처럼 읽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공동체가 무너지는 순간을 상상하며 이 말을 썼습니다. 결정적 위기에서 사람들을 지켜내려면, 리더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02체사레 보르자 — 행운을 타고났던 남자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가장 자주, 가장 뜨겁게 이름을 부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 20대 후반에 이미 로마냐 지역을 정복해나가며 이탈리아 통일의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남자. 잘생기고, 잔인하고, 결단력 있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교황이었습니다.
운명, 행운, 시대의 흐름.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
마키아벨리는 이것을 변덕스러운 강물에 비유했다.
역량, 결단력, 준비된 힘.
운명에 맞서 제방을 쌓아두는
한 사람의 실력과 각오.
체사레는 태어나면서부터 포르투나(운명)의 총아였습니다. 아버지의 교황 권력, 프랑스 왕의 후원, 스페인 혈통 — 당대 이탈리아 어떤 젊은이도 갖지 못한 조건을 그는 그냥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 사람을 아주 오래 관찰했습니다. 체사레는 정복한 지역에 부하 레미로 데 오르코(Remirro de Orco)를 보내 무자비하게 질서를 잡게 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어느 날 아침 광장에 그의 시신을 두 조각 낸 채 세워둡니다. '나는 저 폭력과 무관하다, 저건 처벌받아야 할 악이었다' — 백성은 공포와 안도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이 장면을 두고 "경탄스럽다"고 썼습니다. 잔인함을 예찬한 게 아니었습니다. 단 한 번의 냉혹함으로 오래 이어질 폭력과 혼란을 끝낸 정치적 계산을 본 것이었습니다.
03그런데, 그가 무너지는 데는 며칠이면 충분했다
정점
체사레는 로마냐 대부분을 손에 넣고, 이탈리아 중부의 실질적 지배자로 부상. 마키아벨리가 피렌체 특사로 그를 관찰하며 그의 결단력·조직력·잔혹함에 매료된다.
단 한 사건
아버지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급사한다. 체사레 본인도 같은 시기 열병(말라리아 추정)에 걸려 사경을 헤맨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배신과 몰락
새 교황으로 율리우스 2세(보르자 가문의 오랜 적) 즉위. 체사레가 정복해두었던 로마냐가 순식간에 이반. 그를 두려워하던 자들이 등을 돌린다.
변방에서의 죽음
스페인으로 도망친 뒤 나바라 지역의 이름 없는 전투에서 전사. 이탈리아 통일의 유력한 후보였던 남자가, 서른한 살에 거의 잊혀진 채 죽는다.
마키아벨리는 이 붕괴를 실시간으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지점에서 『군주론』의 핵심 문장이 잉태됐을 것입니다.
그의 실패는 그의 잘못이 아니라,
포르투나의 극단적이고 잔혹한 반전 때문이었다.
얼핏 보면 체사레를 감싸는 말 같지만, 이 문장은 훨씬 무서운 진단을 담고 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사레가 실패했다고 결론짓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힘을 아버지의 운(교황이라는 지위)에 얹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빌린 힘으로 세운 권력은, 빌려준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 회수된다.
체사레는 남의 포르투나 위에 자기 세계를 지었다.
아버지가 죽고, 자신이 병들자 — 그 세계도 함께 무너졌다.
이게 마키아벨리가 비르투(virtù)를 그렇게까지 강조한 이유입니다. 운(포르투나)은 필연적으로 변덕스럽습니다. 언제나 좋은 편일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리더가 해야 할 일은 하나입니다 — 운이 좋을 때, 나쁠 때를 대비해 제방을 쌓아두는 것. 자신의 실력, 자신의 사람들, 자신의 군대, 자신의 판단으로.
04『군주론』의 진짜 메시지 — 세 문장으로
세상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 있지 않다
마키아벨리는 '있어야 할 세상(sein-sollen)'과 '있는 세상(sein)'을 구분합니다. 이상론은 위로가 되지만, 이상론만 붙들고 있는 리더는 공동체를 지키지 못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 있는 그대로의 조직, 있는 그대로의 시장을 먼저 인정하는 데서 진짜 리더십이 시작됩니다.
운(포르투나)은 인생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당신 몫이다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가 우리 삶의 절반쯤을 지배한다고 썼습니다. 체사레의 몰락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덧붙입니다. 나머지 절반은 우리의 비르투에 달려 있다고. 운은 통제할 수 없지만, 운이 왔을 때 그것을 감당할 준비된 사람이 되어 있느냐는 온전히 내 몫입니다.
리더의 냉혹함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게 마키아벨리를 오해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붙잡아야 할 문장입니다. 그가 옹호한 단호함·냉혹함·결단은 항상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위한 잔혹함은 그도 미움받는 폭군의 특징으로 지목했고, 그런 리더는 반드시 무너진다고 봤습니다.
05지금, 우리에게 남는 질문
저는 이 책을 다시 덮으면서 리더로서, 그리고 한 명의 직장인·조직원으로서 스스로에게 세 가지를 물었습니다.
ASK YOURSELF · 리더에게 남는 세 가지 질문
-
나는 지금 누구의 포르투나 위에 서 있는가?
내가 가진 자리·영향력·자원 중, 나 스스로가 만든 것과 빌린 것은 각각 얼마인가? 빌려준 사람이 사라졌을 때, 나는 무엇으로 서 있을 수 있는가? -
운이 좋았을 때, 나는 어떤 제방을 쌓았는가?
호황·기회·좋은 상사·좋은 시장 — 그때 나는 다음 겨울을 대비해 어떤 실력·팀·시스템·관계를 만들어두었는가? 아니면 다 써버렸는가? -
나의 냉혹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리더에게는 어쩔 수 없이 단호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 결정이 향한 곳이 공동체(팀·조직·고객)인가, 아니면 결국 나 자신인가?
체사레 보르자는 재능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 대부분보다 훨씬 유능했고, 훨씬 결단력 있었고, 훨씬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그런 그가 무너진 이유는 딱 하나 — 자신의 세계를 남의 운 위에 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500년 전 시골집에서 이 문장을 쓸 때 던진 질문은, 오늘 우리 사무실과 조직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비르투로 서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의 포르투나 위에 얹혀 있습니까.
공동체를 지키려는 모든 사람에게 준 거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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