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직선
특강 소개서를 정리하다가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3년 전쯤 어디엔가 써놓았던 저의 자기소개, "부드러운 직선을 지향합니다." 이 문장을 요즘 다시 봅니다.
부드러운 직선. 형용모순 같은 표현입니다. 부드럽다는 것은 휜다는 뜻이고, 직선은 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도 저는 이 말을 버리지 못합니다. 25년간 리더·문화·팀에 관해 강연하고 컨설팅해온 사람으로서, 이 표현이 제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것에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저서가 열 몇 권 되고, 특강 프로그램은 일곱 개입니다. Becoming a Leader, 일터의 대화, 커리지, 캘리브레이션, Engagement, Beyond Reason, 늦은 나이는 없다. 얼핏 보면 주제가 흩어져 있습니다. 리더십, 성과관리, 세대 담론, 협상, 자기계발까지. 자기 브랜딩 컨설턴트가 봤으면 "포지셔닝이 없다"고 지적했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한동안 그게 신경 쓰였습니다. "내가 하는 것이 결국 다 리더십인가, 아니면 조직문화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답합니다. 주제가 흩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각도만 바꿔서 계속 들여다본 것이라고. 각도가 다르면 이름이 달라집니다. 그뿐입니다.
10년, 5만 명, 그리고 하나의 발견
『커리지』(2023)를 쓸 때 표지에 이런 문장을 얹었습니다. "10년간 5만 명에게 리더십 강의를 한 컨설턴트의 발견." 나중에 조금 후회했습니다. 문장이 무겁고, 낯간지럽고, 무엇보다 사실만 나열한 것 같아서요. 발견이 무엇인지가 빠져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쓴다면 이렇게 쓸 것 같습니다. 5만 명을 만나고서 발견한 것은 하나입니다. 리더십의 문제는 대개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이 "이건 이렇게 해야 합니다"를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걸 말할, 그걸 밀고 나갈, 그걸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용기가 없어서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의를 5만 번 해도 이 사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문장은 그래서 나왔습니다. 두려움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용기는 통제할 수 있습니다.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분 하나만 손에 쥐고 있어도, 리더가 매일 마주하는 90%의 상황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리더가 오해하고, 구성원도 오해하는 것
리더십 강의에서 매번 보여드리는 그래프가 있습니다. 리더가 자기 역할을 어디에 두는지, 그리고 구성원이 리더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나란히 그린 것입니다. 두 막대는 좀처럼 겹치지 않습니다.
리더는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대개 모릅니다. 구성원도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말하지 못합니다. 강의는 그 사이를 통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역이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저는 리더 편도 아니고 구성원 편도 아닙니다. 두 언어 사이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부드럽지 않으면 도달하지 않고, 직선이 아니면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드러운 직선입니다. 강의에서 저는 웬만해선 화를 내지 않습니다. 나쁜 리더를 지목해 공격하지 않습니다. 회사 이름을 대며 조롱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은 방어태세로 들어가고, 방어태세로 듣는 강의는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부드러워야 도달합니다.
동시에 저는 결론을 흐리지 않으려 애씁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상황이 다르죠" — 이런 말들로 세 시간을 채우고 나가는 강의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청중은 답을 들으러 왔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틀릴 수 있어도, 이 자리에서는 이렇게 하시는 게 낫습니다라는 판단을 내려드리는 게 강연자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선이 아니면 남지 않습니다.
『일터의 대화』에서 다 하지 못한 말
가장 최근에 완성한 특강은 『일터의 대화』입니다. 부제를 "AI 시대, 일 잘하는 사람의 문법"이라 붙였습니다. 이 특강에는 경계해야 할 다섯 가지 사람 유형이 나옵니다. 크레딧을 독점하는 사람, R&R만 찾는 사람, "뭘 하면 될까요"를 계속 묻는 사람, 자주 아픈 사람(몸이 아니라 책임이 아픈), 그리고... 마지막 유형은 강의에서 직접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강의를 만들면서 가장 오래 고민한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결론 없는 대화는 친교, 실행 없는 대화는 책임 회피." 이 문장을 강의에 넣을지 뺄지 여러 번 뒤집었습니다. 너무 세다는 피드백을 여러 번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넣었습니다. 부드러운 직선이니까요. 부드럽게 말하되, 직선은 흔들지 말자고요.
89세까지 일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가끔 묻습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하실 거냐고. 89세까지 일터에서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게 저의 계획입니다. 65세, 70세, 80세가 아니라 89세인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그저 90보다는 89가 더 살아있게 느껴집니다.
그때까지 어떤 강의를 하고 있을지는 저도 모릅니다. 지금의 일곱 개 특강 중 몇 개는 사라지고, 몇 개는 이름을 바꾸고, 몇 개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주제로 대체되겠지요. 그건 괜찮습니다. 다만 하나만 지켜졌으면 합니다. 그때도 여전히, 부드러운 직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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