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수고로움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존재하게 한다
며칠 전 저녁, 저는 원고 파일을 다시 열었습니다. 『어른의 독서』 최종 원고였습니다. 그날 낮에 저는 뉴스 세 개를 연달아 봤습니다. 문학동네가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는 기사, 이기주 작가의 사재기 논란 기사, 그리고 중앙일보와 JTBC가 회생 절차와 매각을 공식화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세 기사는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저에게는 같은 소리로 들렸습니다. 지식을 다루는 산업의 뿌리가 흔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원고를 다시 열었을 때 저는 조금 초조했습니다. 이 책이 늦은 것은 아닐까, 이미 끝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습니다.
글은 넘치는데 읽을 것이 없다
요즘 저는 이상한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읽을 것이 없다." AI가 매일 글을 쏟아내는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피드를 아무리 내려도 마지막에 남는 문장이 없습니다.
글이 늘어난 자리에 읽을 것이 줄어드는 이 이상한 시대에, 저는 원고를 다시 폈습니다. 문현웅 작가님과 이 책을 시작할 때 붙잡았던 문장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 문장을 저는 원고에 세 번 넣었습니다. 처음 넣었을 때는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너무 큰 말 같았습니다. 두 번째로 넣을 때는 이 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세 번째로 넣을 때, 저는 이 말이 이 책의 축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저도 자주 외주를 줍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에도 저는 자주 편해지려 했습니다. 자료 정리를 AI에게 맡기고, 요약도 맡기고, 어떤 날은 "이 챕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까지 물어봤습니다. 편했습니다. 그런데 편한 만큼 문장이 얇아졌습니다.
그럴 때는 AI가 써준 문단을 지웠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손으로 밀었습니다. 어떤 날은 한 시간을 들여도 세 문장을 못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세 문장이 AI가 만들어준 열 문장보다 제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쓰다 보면 압니다.
그날 카페에서 제가 못 한 대답
얼마 전 카페에서 후배님 한 분이 물었습니다. "박사님, 요즘도 책을 그렇게 많이 읽으세요? 요약본이 이렇게 좋아졌는데요." 저는 웃으며 "그래도 읽습니다"라고만 대답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그 이상 말이 안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그 대답이 게을렀다고 생각했습니다. 후배님이 궁금했던 건 제가 책을 얼마나 읽느냐가 아니라, 왜 굳이 그 수고를 지금도 하느냐였습니다.
그때 이렇게 답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요약은 정보를 가져다줍니다. 그런데 요약은 저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300페이지를 제 속도로 걸어본 다음에야 얻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잃고 싶지 않아서 아직도 읽습니다." 이 대답을 그 자리에서 못 한 게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럼 무엇을 읽는가
문현웅 작가님과 저는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신간을 고를까, 주제별로 묶을까, 분야별로 정리할까. 결국 고전 20권으로 좁혔습니다. 역사, 문학, 정치, 경제. 네 영역에서 다섯 권씩.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시간이 검증한 책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출판사가 팔리고 언론사가 매각되는 동안에도 그 책들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함께 걸어보자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습니다.
잘 안 됐던 것, 그리고 남은 것
이 책이 다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원고를 넘기고 나서도 몇 챕터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떤 챕터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고, 어떤 챕터는 저도 아직 소화하지 못한 문장이 들어갔습니다. 책이 나오면 저는 늘 그 챕터부터 다시 폅니다.
그래도 이 책을 세상에 내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앞으로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훨씬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AI가 평균을 다 끌어올리면, 그 위로 올라가는 방법은 결국 자기 힘으로 쌓은 것뿐입니다.
이 문장을 오늘 다시 씁니다. 원고에 세 번, 카드뉴스에 한 번, 이 글에 두 번. 다음에 이 문장을 만날 때는, 조금 더 감당하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어른의 독서』 최익성 · 문현웅 작가님 공저 · 파지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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